사천 이야기 · 연대기
1953년의 활주로부터 2024년의 우주항공청까지
스크롤하면 시대가 바뀝니다
1952년 9월, 한국전쟁 중의 사천 하늘. 사진: David Ketel / Rijksmuseum (CC0), 1952
1953년 가을, 경상남도 사천의 활주로에서 작은 비행기 한 대가 떠올랐습니다. 우리 손으로 설계해 만든 첫 비행기였습니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2024년 5월, 같은 도시에 우주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사천은 경상남도 남해안에 있는 도시입니다. 넓은 평야가 있고 그 평야 위에 활주로가 있습니다. 지금 이 도시에서는 전투기와 위성을 만듭니다. 우주로 갈 로켓의 조립도 맡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것은 우연이었고 어떤 것은 전쟁 때문이었습니다. 한 회사의 결정에서 비롯된 것도 있습니다. 그 일들이 70년에 걸쳐 하나씩 얹히면서 지금의 사천이 되었습니다.
이 페이지는 그 순서를 따라갑니다. 기록이 서로 어긋나는 곳에서는 한쪽을 고르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계획은 “예정”이라고 적었습니다. 내용은 2026년 8월을 기준으로 합니다.
1930년대 말 ~ 1950년대
비행기를 만드는 도시가 되기 전에, 사천에는 먼저 활주로가 있었습니다. 그 활주로를 처음 만든 것은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사천에는 넓은 평야가 있습니다. 사천평야입니다. 비행장을 만들려면 평평하고 넓은 땅이 필요합니다. 사천평야는 그 조건에 맞았습니다.
일제는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초 사이에 이 평야에 군용비행장을 만들었습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치르기 위한 군사시설이었습니다. 언제 공사를 시작하고 언제 문을 열었는지는 기록마다 다릅니다. 착공을 1939년으로 적은 기록이 있는가 하면 개장을 1940년대로 잡은 기록도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는 “일제 말기”까지만 적어 두었습니다.
광복 뒤 이 비행장은 군이 이어받아 사용했습니다.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사천비행장은 공군의 중요한 기지가 되었습니다. 미군과 유엔군은 이 기지에 K-4라는 코드를 붙였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는 사천기지가 지리산 지역 작전 때 항공기가 출동하는 기지로 쓰였다고 전합니다.
전쟁 중에 사천이 맡은 또 하나의 일은 조종사를 길러내는 것이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1951년 8월 1일 사천기지에 있던 공군비행단이 제1전투비행단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부대는 뒤에 제1훈련비행단으로 개편되어 조종사 양성 훈련에 집중했습니다.
지금도 사천공항에는 공군 제3훈련비행단이 있습니다. 조종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여기서 비행 교육을 받습니다. 부활호가 떠올랐던 그 활주로에서 70년 넘게 같은 일이 이어져 왔습니다.
1953 ~ 1954 (그리고 2004, 2008)
전쟁이 끝나갈 무렵, 사천기지 안의 작은 학교에서 스물일곱 명이 모여 비행기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설계도부터 직접 그렸습니다.
1953년 6월, 사천기지 안에 있던 공군기술학교에서 국산 비행기 만들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학교장 김성태 대령의 지시였습니다. 설계는 정비 교육을 담당하던 이원복 소령이 맡았습니다. 전담반은 스물일곱 명이었습니다.
이들이 일한 곳은 좋은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주간경향 기사는 이들이 “사천기지의 허름한 막사에서 설계도를 제작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제작에 걸린 시간은 약 넉 달입니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 항공기를 만든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넉 달 만에 비행기 한 대를 완성했습니다.
“국산 1호”라는 말의 뜻부터 갈라 봅니다. 국가유산청 해설문은 이 비행기를 “공군이 자체 설계·제작한 국내 최초의 항공기”라고 적습니다. 기체의 구조를 우리가 설계하고 만든 첫 비행기라는 뜻입니다. 엔진·프로펠러 같은 동력 부품은 미군 연락기의 것을 가져다 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교차 확인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부품을 우리가 만든 첫 비행기”는 아닙니다.
완성된 비행기는 1953년 10월 사천기지에서 첫 시험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조종은 민영락 소령이 맡았습니다. 설계자 이원복 소령도 함께 탔습니다. 자기가 그린 설계도로 만든 비행기에 직접 올라탄 것입니다.
이 비행기는 2인승 프로펠러 경비행기였습니다. 길이 6.60m, 날개폭 12.70m, 높이 3.05m, 무게 380kg. 어른 대여섯 명의 무게밖에 되지 않는 작은 기체입니다.
첫 비행 날짜는 기록에 따라 10월 10일과 10월 11일로 갈립니다. 10월 10일을 “완성일”로 표기한 기록도 있어, 완성일과 첫 비행일을 구분하지 않은 서술이 섞였을지도 모릅니다. 비행 시간도 “한 시간 반 이상”과 “두 시간”으로 나뉩니다. 최대 속도도 시속 180km와 시속 193km로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이 페이지는 “1953년 10월”까지만 확정해 적었습니다.
1954년 4월 3일, 이승만 대통령이 ‘復活(부활)’이라는 글씨를 직접 써서 내려주었습니다. 이 비행기의 이름이 ‘부활호’가 되었습니다.
‘부활’은 다시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국가유산청 해설문은 이 이름의 뜻을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의 자존심 회복”이라고 썼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의 나라에서, 우리가 만든 비행기 한 대에 그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름을 붙이는 행사인 명명식이 어디에서 열렸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국가유산청 해설문은 “1954년 4월 김해비행장에서 명명식을 거행했다”고 썼습니다. 이 서술을 담은 자료는 한 곳뿐입니다. 부활호가 만들어지고 처음 날아오른 곳은 사천이지만 명명식이 사천에서 열렸다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부활호는 1960년 무렵까지 연락기와 연습기로 쓰였습니다. 그 뒤 한국항공대학으로 넘어가 학생들의 실습에 쓰였습니다. 어느 시점부터는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학으로 넘어간 시점은 자료에 따라 1954년, 1956년, 1960년으로 갈립니다.
44년이 지난 2004년 1월 13일, 부활호의 원형이 발견됩니다. 장소는 대구 경상공업고등학교의 제도실 건물 지하창고였습니다. 설계자 이원복이 오래 수소문한 끝에 그 학교에서 일했던 사람의 제보가 닿았습니다. 발견 당시 부활호는 뼈대만 남아 있었습니다. 외피와 날개, 엔진과 프로펠러는 없었습니다.
공군이 복원을 맡았습니다. 51년 전 만들 때와 같은 스물일곱 명으로 복원팀을 꾸렸습니다. 2004년 10월 22일 복원기념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2008년 10월 1일, 부활호는 ‘국산 1호 항공기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 제411호가 되었습니다.
부활호의 원형은 지금 사천에 없습니다. 국가등록문화유산 제411호로 등록된 원형기는 충북 청주에 있는 공군사관학교 공군박물관에 보존돼 있습니다. 소유자는 공군본부입니다. 사천에서 태어난 비행기가 청주에 남아 있습니다.
사천항공우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도 부활호가 있지만 이것은 복제품으로 보인다고 쓴 기록이 있습니다(박물관 공식 전시목록으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2004년 복원기념 비행의 행사 장소도 대구와 사천으로 기록이 갈립니다.
공군기술학교 학교장 · 당시 계급 대령
1953년 6월 사천기지 안 공군기술학교에서 국산 비행기 개발을 지시했습니다. 전담반 27명이 구성된 것이 이 지시에서 비롯됐습니다.
전거: 디지털청주문화대전 GC00203158 · 오마이뉴스 · 주간경향
공군기술학교 정비교육대 소령
부활호의 설계를 책임졌습니다. 1953년 10월 첫 시험비행에 직접 동승했습니다. 50년 뒤 사라진 부활호를 수소문해 2004년 1월 13일 대구 경상공업고등학교 지하창고에서 원형을 다시 찾아내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설계도를 그렸고 그 비행기에 직접 올라탔습니다. 50년 뒤에는 다시 찾아냈습니다.
전거: 디지털청주문화대전 GC00203158 · 한국일보 2004-10-23 · 오마이뉴스
소령(당시)
1953년 10월 사천기지에서 부활호의 첫 시험비행을 조종했습니다. 2004년 복원 당시 한국일보 보도에 79세로 등장합니다.
전거: 한국일보 2004-10-23 · 뉴스사천
부활호를 만든 전담반은 스물일곱 명이었습니다. 이름이 기록에 남은 사람은 그중 일부입니다.
국방홍보원이 부활호를 다룬 영상입니다. 영상: 국방홍보원 KFN ‘박물관수색대’ (YouTube 임베드). 누르기 전에는 유튜브로 나가는 요청이 없습니다. 유튜브에서 바로 열기
1960년대 ~ 1990년대
부활호 이후 사천의 하늘은 한동안 훈련 비행기의 하늘이었습니다. 비행기를 “만드는” 도시가 되는 것은 40년 뒤의 일입니다.
1969년, 진주비행장이 사천비행장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같은 해 11월 김포와 사천을 잇는 정기 항공노선이 열려 민간 여객기가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군용 비행장이 군과 민간이 함께 쓰는 공항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공군 제3훈련비행단이 사천에 자리를 잡습니다. 언제 자리 잡았는지는 기록마다 다릅니다. 1973년 사천에서 재창설됐다는 기록과, 1975년 5월 비행단 본부를 대구에서 사천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함께 있습니다. 부대의 소속이 바뀐 시점과 본부가 실제로 옮겨온 시점은 서로 다른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1980년대 후반, 정부는 새 전투기를 들이는 큰 사업을 시작합니다. KFP, 차세대전투기 사업입니다. 외국에서 완성품을 사 오는 데 그치지 않고 일부를 국내에서 조립하기로 한 사업이었습니다.
1986년 11월 이 사업의 주계약자로 삼성항공이 정해졌고, 1991년 3월 도입 기종이 F-16으로 결정됩니다. 그러자 삼성항공은 전투기를 최종 조립할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 답이 사천이었습니다.
공장은 1992년 5월 착공해 1993년 10월 준공했습니다. 항공기 최종조립장, 지상점검장, 엔진시험장, 도장작업장을 갖춘 시설이었습니다. 한 지역 매체 기록에 따르면 1994년 10월 22일 F-16D 두 대가 부품 상태로 사천에 도착했고, 1995년 4월 20일 시험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정부가 사천을 항공산업 거점으로 지정했다”는 설명은 사실과 다릅니다. 조사한 자료 어디에도 사천을 항공산업 거점으로 지정한 정책 문서가 없습니다. 실제 출발점은 국책 전투기 사업의 조립 공장 부지를 한 회사가 사천으로 고른 일입니다. 정부가 사천 지역을 산업단지로 지정한 것은 훨씬 뒤인 2017년 항공국가산업단지 단계입니다.
공장 한 곳이 들어온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97년 삼성항공은 창원에 있던 항공기 부품공장까지 사천으로 옮깁니다. 이때부터 항공기 제작의 전 과정이 사천에 모였습니다. 대우중공업도 같은 시기에 들어왔습니다. 1997년 7월 KT-1 생산공장을 착공해 1999년 4월 준공했습니다. 그해 6월에는 전문인력이 사천에 배치되었습니다.
큰 회사가 옮기면 부품을 만드는 협력업체도 따라 옮깁니다. 삼성항공과 대우중공업을 따라 수많은 협력업체가 사천으로 왔습니다. 부품 제작을 200여 개 협력업체가 나눠 맡는 지금의 구조가 이때 자리 잡았습니다.
이 사이에 도시의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1995년 5월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합쳐져 사천시가 되었습니다. 삼성항공 공장이 준공된 1993년에는 아직 ‘사천군’이었습니다.
1991년 12월 12일, 사천의 활주로에서 또 하나의 첫 비행이 있었습니다. 국산 기본훈련기 KT-1의 시제기(시험용 첫 기체)입니다. 오전 10시 17분에 이륙해 10시 55분에 착륙했습니다. 부활호 이후 38년 만에, 사천 하늘에서 다시 우리가 만든 비행기가 처음 날았습니다.
1999 ~ 2010년대
1999년, 사천의 여러 항공 회사가 하나로 합쳐집니다. 그 뒤 20년 동안 이곳에서 훈련기와 경공격기, 헬기를 차례로 만들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나라 경제를 흔들었습니다. 정부는 산업을 정리하면서 항공 분야도 손을 봅니다. 삼성항공,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의 항공기 사업 부문을 하나로 합친 것입니다.
그렇게 1999년 10월 1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출범했습니다. 국군의 날이었습니다.
처음 본사는 서울에 있었습니다. 2005년 초 본사가 사천으로 옮겨옵니다. 옮긴 이유는 현장에서 경영하고 중복된 조직을 합치며 영업과 생산을 한곳에 두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옮겨온 인원은 본사 약 150명이었습니다. 이전이 끝난 시점은 자료에 따라 2005년 2월과 3월로 나뉩니다.
2005년 당시 정부 브리핑은 사천에 이미 모여 있던 것들을 이렇게 열거했습니다. 공군 제3훈련비행단, 항공기 공장, 공군교육사령부, 대학 항공학과, 항공기능대학, 항공우주박물관. 회사가 사천을 고른 것이 아닙니다. 사천에 이미 있던 것들이 회사를 끌어당긴 셈입니다.
지금 KAI 본사 주소는 경상남도 사천시 사남면 공단1로 78입니다.
1988년 개발을 시작해 1991년 사천에서 첫 비행에 성공한 기본훈련기입니다. 1999년부터 양산에 들어갔고, 2000년 9월 공군 217비행교육대대가 처음 도입했습니다. 2004년 2월 3일 여덟 대를 추가로 받으면서 공군의 기본비행훈련 기종이 국산으로 채워졌습니다. 정부 자료는 KT-1을 “최초의 국산 훈련기”라고 씁니다. KT-1 계열은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터키·페루·세네갈까지 네 나라에 수출됐습니다.
소리보다 빠르게 나는 고등훈련기입니다. 1992년 탐색개발을 시작해 1997년 본격 개발에 들어갔고, 2002년 8월 20일 사천비행장에서 첫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오후에 이륙해 40여 분 동안 마하 0.75, 고도 1만 5,000피트까지 올라갔습니다. 2003년 2월 18일에는 마하 1.05로 음속을 넘었습니다. 양산 1호기는 2005년 8월에 나왔습니다. KAI는 T-50을 “대한민국에서 개발한 최초의 국산 초음속 항공기”라고 씁니다. 정부 자료와 언론은 “세계에서 12번째로 초음속 항공기 개발에 성공”이라고 전했습니다.
T-50의 첫 비행 날짜는 옛 자료를 인용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실제 첫 비행은 2002년 8월 20일이었지만 이날 행사는 언론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기사에는 첫 비행이 2002년 10월 30일로 실렸습니다. 이미 성공한 뒤에 공개한 행사였습니다. 게다가 정부 문서 한 편은 같은 글 안에서 “2001년 8월 최초비행”이라고도 적어 스스로 어긋납니다. 2001년의 일은 시제기 조립 완료였는지도 모릅니다.
T-50을 바탕으로 만든 경공격기입니다. 2008년 개발에 들어가 2011년 5월 첫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그해 12월에는 양산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2013년 공군에 양산 1호기가 인도됐고, 2014년 10월 30일 제8전투비행단에서 전력화 행사가 열렸습니다. 인도된 날과 부대에서 전력화 행사를 한 날은 서로 다른 사건입니다.
2022년에는 폴란드로 수출길이 열립니다. 7월 27일 총괄계약을 맺고 9월 16일 48대 규모의 이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12대는 폴란드가 전력을 빨리 채우도록 기존 생산라인을 바탕으로 개조한 물량입니다. 나머지 36대는 2028년까지 인도할 예정입니다. 국방일보는 이를 “국내 항공기 완제품의 유럽 시장 진출은 사상 처음”이라고 썼습니다.
우리 손으로 만든 기동헬기입니다. 2006년 6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약 1조 3,000억 원을 들인 사업이었습니다. 국내 98개·해외 49개 업체와 28개 대학·연구기관이 참여했습니다. 2009년 7월 시제 1호기가 나왔고, 2010년 3월 10일 첫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2012년 12월 17일 초도양산 1호기가 육군항공학교에 납품됐고, 2013년 5월 22일 전력화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정부 자료는 수리온을 “우리나라가 세계 11번째로 개발한 한국형 기동헬기”라고 표기했습니다.
각 카드의 ‘출처 표현’은 출처가 쓴 수식어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이 페이지가 확정한 사실은 아닙니다.
2인승 프로펠러 경비행기
기체 구조를 우리가 설계해 만든 첫 비행기입니다.
기본훈련기
조종사가 처음 배우는 비행기를 국산으로 바꿨습니다.
초음속 고등훈련기
소리보다 빠른 비행기를 처음 우리가 만들었습니다.
기동헬기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는 헬기를 우리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4.5세대 이상 전투기
우리가 설계한 전투기입니다. 아직 실전배치 전입니다.
T-50 첫 비행에서 KF-21까지 — KAI가 만든 53초 영상입니다. 영상: 한국항공우주산업(KAI) (YouTube 임베드). 유튜브에서 바로 열기
2010년대 ~ 2024
비행기를 만들던 도시가 로켓과 위성을 맡기 시작합니다. 2024년 5월에는 우주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이 사천에 문을 열었습니다.
누리호는 우리 기술로 만든 발사체입니다. 발사는 전남 고흥의 나로우주센터에서 하지만 조립에서는 사천의 KAI가 큰 몫을 맡았습니다.
KAI가 담당한 것은 발사체 전체를 조립하는 일(체계총조립)과 1단 추진제탱크, 그리고 엔진 네 기를 하나로 묶는 조립입니다. 2014년부터 개발용 기체와 인증용 기체, 실제로 발사하는 기체의 총조립을 맡았습니다.
누리호에는 부품이 약 37만 개 들어갑니다. 국내 기업 300여 곳이 참여했습니다. 발사는 2021년 10월 21일 첫 시도를 시작으로 2022년 6월 21일, 2023년 5월 25일, 2025년 11월 27일에 이어졌습니다. 4차 발사는 누리호의 첫 야간 발사였습니다.
KAI가 조립을 맡은 것과, 앞으로 누리호를 반복해 발사할 회사가 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반복 발사를 총괄하고 기술을 이전받는 ‘체계종합기업’은 2022년 10월 입찰을 거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되었습니다. 두 역할은 서로 다릅니다.
우주산업 클러스터는 세 곳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전남은 발사체, 경남은 위성, 대전은 연구와 인재 양성입니다. 2022년 12월 국가우주위원회는 경남의 진주시와 사천시를 위성 특화지구로 지정했습니다.
경남 안에서도 역할이 나뉩니다. 사천은 위성을 개발하고 만드는 쪽(위성개발혁신센터), 진주는 만든 위성을 시험하고 검증하는 쪽(우주환경시험시설)입니다. 세 특화지구에는 2024년부터 2030년까지 7년간 총 3,808억 원이 투입될 계획입니다.
KAI는 차세대중형위성 3호를 설계부터 시험·제작까지 총괄하고 2호부터 5호까지의 개발·제작·시험·발사를 총주관합니다.
우주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을 만드는 법이 2024년 1월 9일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입니다. 1월 26일 공포되고 5월 27일 시행됐습니다.
법이 시행된 그날, 우주항공청(KASA)이 사천에서 개청했습니다. 주소는 경상남도 사천시 사남면 해안산업로 537입니다. 첫 청사는 기존 민간 건물을 고쳐 쓴 임시 청사였습니다.
우주항공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속한 중앙행정기관입니다. 개청 당시 정원은 293명이었습니다. 그중 241명이 사천 본청에서, 52명이 제주의 국가위성운영센터에서 일하도록 짜였습니다. 초대 청장은 윤영빈, 초대 우주항공임무본부장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했던 존 리였습니다. 개청과 함께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이 우주항공청의 유관기관이 되었습니다.
개청일인 5월 27일은 국가기념일 ‘우주항공의 날’이 되었습니다. 첫 기념행사는 2025년 5월 27일 사천에서 열렸습니다.
2026년 2월 3일에는 제2대 청장 오태석이 취임했습니다. 2026년 우주항공청 예산은 1조 1,201억 원으로, 2025년보다 16.1% 늘었습니다.
2021 ~ 2026
사천의 공장에서 가장 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전투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전투기를 직접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2001년 대통령의 선언에서 시작됐습니다. 실제 개발은 2015년 12월 시작됐습니다.
2021년 4월 9일, KAI 사천 사업장에서 시제 1호기 출고식이 열렸습니다. 공군은 이 전투기의 이름을 보라매로 정했습니다.
2022년 7월 19일 오후 3시 40분경, KF-21은 사천의 공군 제3훈련비행단 활주로에서 이륙했습니다. 약 33분을 날고 오후 4시 13분경 착륙했습니다. 정부 자료는 KF-21을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개발 중인 4.5세대 이상 첨단 초음속 전투기”라고 썼습니다. 개발 중인 기종 가운데 여덟 번째이므로, “세계 8번째 전투기 개발국”처럼 줄여 말하면 뜻이 달라집니다.
같은 해 10월 사천에어쇼에서는 시제 3호기가 관람객 앞에 놓였습니다. 사천에서 만든 전투기를 사천 사람들이 처음 본 자리였습니다.
2024년에 양산 준비가 진행됐습니다. 3월 22일 양산 계획이 의결되고 6월 25일 계약이 체결됐습니다. 양산 사업은 7월에 시작됐습니다. 만드는 장소는 사천의 KAI입니다.
2026년에는 굵은 일이 잇달아 있었습니다.
2026년 8월 현재 KF-21 양산 1호기는 아직 공군에 인도되지 않았습니다. 공군의 수락시험을 거쳐 2026년 9월에 인도·실전배치할 예정입니다. 계획은 2032년까지 120대입니다. 이 페이지에서 “예정”이라고 적은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계획은 바뀔 수 있습니다.
KF-21의 첫 비행 현장 영상(KAI)입니다. 영상: 한국항공우주산업(KAI) (YouTube 임베드). 유튜브에서 바로 열기
2026, 그리고 예정
사천시는 스스로를 “대한민국 우주항공 수도”라고 부릅니다. 숫자로 보면 그 말에 근거가 있습니다. 계획으로 보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사천의 비중을 나타내는 숫자는 두 가지가 돌아다닙니다. 재는 범위가 서로 다를 뿐입니다.
숫자 카드 A
4조 233억 원매출액 · 전국의 52.4%
9,526명종사자 · 전국의 45.4%
사천시가 우주항공산업진흥원 유치 근거로 제시한 수치입니다. 어느 자료에도 기준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숫자 카드 B
80%국내 생산액
70%종사자
67%사업체
범위를 항공기 제조 분야로 좁히면 이만큼이 사천에 있습니다.
두 숫자를 나란히 쓸 때는 반드시 범위를 함께 적어야 합니다. “사천이 우주항공산업의 80%”라고 쓰면 잘못입니다.
사천에는 우주항공 관련 기업 300여 곳이 모여 있습니다. 부품 제작은 200여 개 협력업체가 맡습니다. KAI 매출의 약 70%가 협력사로 갑니다. 사천시는 사천제1·2일반산업단지와 종포일반산업단지에 항공산업단지를 조성해 40여 개 업체를 들였습니다.
기관과 시설도 한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우주항공청, KAI,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공군 제3훈련비행단, 사천공항, 경남테크노파크 우주항공본부,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삼천포공업고등학교입니다.
사람을 길러내는 구조도 3단으로 짜여 갑니다. 기능 인력은 한국폴리텍대학 항공캠퍼스, 학부는 국립창원대 사천우주항공캠퍼스(2030년 개교 목표), 대학원과 연구는 경상국립대 사천캠퍼스입니다. 경상국립대는 2026년 4월 7일 교육부의 캠퍼스 위치 변경 승인을 받았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크게 넷입니다. 2026년 8월 기준으로 넷 모두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2025년 2월 25일 제3회 국가우주위원회가 신청사 입지를 우주항공국가산업단지 사천지구로, 이전 목표를 2030년으로 정했습니다. 계획은 부지 6만 9,000㎡, 사업비 2,100억 원, 2027년 착공입니다. 전부 예정입니다.
아직 제정되지 않았습니다. 관련 법안은 두 건입니다. 2024년 6월 2일 발의된 법안은 그해 8월 국토교통위 소위에 회부된 뒤 진전이 없었고, 2025년 12월 2일 여야 42명이 발의한 법안은 2026년 2월 10일 상정돼 소위 심사 단계에 있습니다. 사천시는 2026년 8월 초 “연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습니다. 조사 시점까지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2026년 4월 17일 공청회에서 처음 공개된 구상입니다. 계획인구 최대 3만 2,894명, 주거 1만 4,680가구, 우주항공 혁신권역·교육정주 복합권역·문화산업 융복합권역 3개 권역. 준공 목표는 2045년입니다. 구상 단계이며 도시개발구역 지정부터 남아 있습니다.
사천시가 추진 중입니다. 2026년 2월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습니다. 우주항공청은 설립 타당성 조사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지역의 미래 계획은 발표와 실현 사이가 멉니다. 이 절의 네 항목은 발표된 계획입니다. 아직 결과가 아닙니다. 좋은 예가 하나 있습니다. 누리호 5차 발사는 2026년 6월에서 8월로, 다시 9월과 10월로 세 차례 미뤄졌습니다. “예정”은 예정입니다.
KAI가 2002년 8월 문을 연 박물관입니다. 경남 사천시 사남면에 있습니다. 실내 항공우주관·자유수호관·야외전시장으로 나뉩니다. 야외전시장에는 대통령 전용기로 쓰였던 C-54 스카이마스터, 제공호(F-5A), T-50 골든이글 등 실물 항공기가 놓여 있습니다. 부활호도 야외전시장에 있지만 복제품으로 보인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원형은 청주의 공군사관학교 공군박물관에 있습니다.
사진: Mztourist /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사천시가 2013년 3월 문을 연 시설로 박물관과 붙어 있습니다. 주제별 전시·체험시설과 4D 영상관, VR 체험존이 있습니다. 2025년 1월부터 두 시설이 통합 운영돼 관람 시간이 같고 매표소가 하나입니다.
2004년 처음 열렸습니다. 2023년부터는 짝수 해에만 엽니다. 2024년 행사(10월 24~27일)에는 41만 3,200여 명이 왔습니다. 역대 가장 많은 관람객입니다. 2026 사천에어쇼는 10월 22일부터 25일까지 열릴 예정입니다.
1930년대 ~ 2045(예정)
78개 항목을 한 줄로 이어 놓았습니다. 굵게 표시한 것은 사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절 이름으로 걸러 봅니다. 한 사건이 여러 절에 걸릴 때는 그 이야기를 다룬 절에 넣었습니다. 그래서 ‘2 부활호’를 고르면 1953년과 함께 2004년·2008년 항목도 나옵니다.
확인한 것과 확인하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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